홈 회원가입 로그인 오시는길 마이페이지





자유게시판
홈 > 열린마당 > 자유게시판
작성자 hongsulk1956
제목 부산역에서 한 노숙인 형제님을 모셔오는 날
작성일자 2019-07-14
조회수 1831
추천수 177

 

 

설날 연휴가 낀 24일과 5일은 부산역 노숙을 못나갔습니다. 그래서 한 주간 중 4일을 노숙해야겠다는 다짐도 있고 해서 정월 초이튿날부터 연휴이지만 6일 수요일부터 쭉 토요일까지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토요일도 노숙 짐을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입춘도 지났건만 여전히 밤바람은 차가웠습니다. 특히 이날은 1000일 기도의 178일째 날이었고 하필 전날이 노숙 100일째 날을 보낸 101일째 날이었기에 조금은 마음가짐을 다시 여미는 터였습니다. 저는 대체로 밤 10시 직전 쯤 부산역에 도착하여 먼저 화장실을 다녀 용변과 양치를 합니다. 그리고 나서야 거의 붙박이처럼 자리 잡은 2번 게이트 문 옆에 자리를 깔죠.


 

그런데 설날을 지나면서 의아스럽게도 저와 20여 미터 떨어진 3번 게이트 문 앞에, 늘 그 자리를 24시간 똬리를 틀고 계시던 한 여성노숙인 자매 한분이 보이질 않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분은 멘탈에 약간 이상이 있어보였고 짐 보따리(비닐봉지)가 기둥 주위로 수십 개 쌓아 놓여 있었는데 짐이 하나도 온데 간 데 없는 겁니다. 그 추웠던 한 겨울을 거의 함께 보냈기에 유독 관심이 갔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그 자리를 자세히 살폈습니다. 너무도 깨끗이 치워져 있었고 주변이나 건물 내부 구석을 찾아봐도 그 여인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설날 전후로 있었던 것일까.’ 궁금하였습니다. 누구에게도 물어 보기도 그렇고 또 물어 볼만한 곳도 없었습니다. 그저 짐작에 질병이나 신체적 문제가 생겨서 병원으로 강제적으로 이동 조치가 되는 상황이 생겼거나, 아니면 여성 응급쉼터 등으로 갔거나.... 그 외엔 뾰족이 가능성이 있을만한 게 없을 겁니다. 아무튼 어디가든 건강히 또 평안하기를 마음 한쪽으로 기원하면서 내 자리를 펼칩니다.


 

제가 까는 자리는 특별하게 만든 것이기에 보통 노숙인들에 비하면 상당히 고급스럽습니다. 처음 작년 여름에 나올 땐 종이박스를 깔았으나 가을이 되면서 바닥의 차가운 기운을 막으려고 은박 씨트로 바꿨습니다. 그러나 점점 겨울이 가까이 오자 대리석 바닥은 얼음장 같았고 은박 씨트 두 겹도 감당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등산용 씨트였습니다. 구포시장에서 구입한 걸 아예 두 겹으로 접어서 천으로 외피를 입혔고, 그것을 담아 다닐 작은 천 가방까지 옷 수선 집에서 맞췄습니다. 침낭도 5년 전 광화문에서 세월호 동조단식 때 얻어 쓰던 걸 유용이 쓰게 되었는데, 발이 시려서 잠이 잘 들지 않자 발싸개를 별도로 만들어서 침낭 속에다 넣어 쓰니 그런대로 견딜 만 했습니다. 얼굴 싸게도 단단히 해야 했습니다. 건물 사이로 부는 겨울바람이 칼바람인데다 자고나면 온갖 먼지와 쓰레기가 침낭을 뒤덮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100일을 지나자 이젠 몸에 익었는지 익숙한 솜씨로 잠자리를 채비하고 번데기가 고치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완전무장 한 채 자리에 누우면 왠지 편안하고 포근한 게 병아리가 날개아래 품겨진 것 같은 느낌이 오는 겁니다. 참 이상도 하죠. 아내와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집 아파트 안방 침대도 아닌, 실내온도 5~10도를 오르내리는 한두 평가량의 부활의집 내방의 전기장판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사정은 그런 저를 가만 두지 않은 상황들이 자주 있다는 데 있습니다. 하필이면 이 겨울철에 역사 안의 점포들이 리모델링을 하는지 밤새워 작업자들이 철거하거나 또 폐자재를 실어내는 소음과 먼지들, 가끔 낮 모르는 술 취한 노숙인이 야임마! 너 머야? 어디서 굴러왔어 자식아!” 하며 걷어찬다든지, 소주병과 종이컵만 달랑 들고 와 술 한 잔 하자고 줄기차게 치근덕거리던지. 그런데 이날은 좀 달랐습니다.


 

해임요, 해임요~ 일라보이소


 

새벽 3시쯤이었을까요? 오근 형제였습니다. 오근 형제는 20여 년 전 부산역에서 만났는데 세월이 흘러 어느덧 50대 중반에 들어섰습니다. 부산역을 무대(?)주먹쟁이행세를 하다가 걸핏하면 교도소를 드나들었는데, 3년을 복역하고 지난 해 3월경 나왔다는데 내가 그해 8월 노숙에 나오자 만났습니다. 그간 셋방하나 얻었다면서 내게 자랑스레 보여 주겠다 해서 가봤더니, 어디서 밥통과 냉장고 한 대만 덩그러니 갖다 놓았습니다. 부산역 맞은 편 여관골목 끝자락 비좁은 집 사이길 가파른 계단을 올라 구석지고 습기 찬 방이었습니다. 중고 TV 한 대만 구해달라고 해서 우리 집에 있던 대형 평면 스탠드 형 하나를 갖다 줬더니 참 좋아라하였습니다. 그 후 선풍기며 밥상이며 이불에다 세탁기까지...


 

그리고 어느새 한 여인을 데려다 놓고(아마 내가 아는 여자만 대여섯 번째는 되는 가 봅니다.) 어느 날 내려오라고 했다면서 찾아 온 동거녀에게 인사를 시키더군요. 이젠 나이도 있고 큰집(?)이 지긋지긋하다면서 술도 끊고 잘 해 보련 다며 내게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내게 해임’(형님)이라고 불러도 되겠냐고 하기에, 나는 기쁘게 허락하기도 했습니다.


 

오근형제는 오토바이를 몰고 부산역을 지킵니다. 거의 매일 벌어지는 노숙인들의 술판, 10여명이 새벽 2~3시까지 아니 어떤 때는 날이 샐 때까지 이어집니다. 오근 형제는 자청 보안관이 되어 술판 옆에서 한발 떨어져서 지켜주고 혹 쌈질이 나면 능숙하게 말리며 정리(?)를 합니다. 그렇게 두어 달 지났을까? 어느 날 밤 부활의집에서 자는 날인데 새벽 1시정도 전화가 왔습니다. 초량지구대랍니다. 자신은 싸움을 말릴 뿐이었는데 짭새’(경찰관)들이 나를 엮어 넣으려 한다면서 흥분되어 있었습니다. 빨리 나더러 오라고 재촉하더군요.


 

다음 날 아침 동부경찰서를 찾았을 땐 이미 조서가 끝났었습니다. 지구대고 경찰서고 오근형제는 성질이 돌아버리면 휘저어버리기 때문에 다시 몇 달 만에 교도소행은 간단한 과정입니다. 나로선 겨우 검찰이나 재판부에 탄원서 한 장 넣는 외에 할 게 없습니다. ! 그런데 다행히도 오근형제는 풀려났습니다. 오근형제도 해엠덕이라면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막노동(보일러 시공) 보조공으로 하루 일하고 와서는, 입에 단내가 나도록 식겁했다면서 노가다도저히 못하겠답니다. 그러면서 동사무소에 수급자 신청 해 놨는데 잘 되록 기도해 달랩니다.


 

오근형제는 거의 매일 밤늦게 오토바이로 순시하면서 내가 무사히 자고 있는지 살펴보았을 것이고, 그렇게 한 겨울을 보냈는데... 하루는 술이 잔뜩 취해서 꼭두새벽에 나를 깨웠습니다.


 

오그이 이래 안 살았는데... 해임요~ 영 인간 안 되것지요?”


 

나는 등을 토닥이고 어깨를 쓰다듬으면서 지금 잘하고 있다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격려하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오근형제는 눈물을 훔치고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새벽 어쩌자고 다시 깨우는 걸까요. 침낭 지퍼를 내리고 일어나 앉으려니, 오근형제가 저쪽을 향해 손짓을 하면서,
 

어서 오라카이!”


 

어두운 저쪽에서 지팡이를 짚고 어기적어기적 때 기름이 남루한 차림에 큰 키지만 몸이 굽어진 채로 엉거주춤 각목지팡이를 집고 천천히 다가오는 한사람.


 

인사해라. 울 해임 목사님이데이. 내말대로 따라 가래이. 니 여서 빌빌 대다가는 죽는 기라.”


 

오근 형제가 소개한 노숙인은 다가오더니 거구정한 자세로 약간 허리를 숙이더니,


 

○○라고 합니다.”


 

나는 그 형제님과 조금 있다가 530분에 화장실 앞에서 보자고 단단히 약속하였습니다. 형제님이 돌아서 가자 나는 다시 침낭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습니다.


 

하필 이날도 공사장 인부들이 바로 내 앞에 짐차를 대놓고 철거한 폐자재들을 싣느라고 소리가 요란해 잠에서 깼습니다. 510분인데 침낭에서 나오니 찬바람에 몸이 움츠려졌습니다. 침구를 정리하고 약속보다 조금 이르지만 역사 안 화장실 앞으로 가보니 벌써 와 쓰레기통에 기대어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두 시간이나 지났건만 아까 나와 인사하고 바로 이곳으로 와서 지금껏 기다리고 있었다는 겁니다.



 

나는 송 형제님의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걷는 속도에 맞추어 지하철역으로 향했습니다. 새벽 지하철 객차 안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작업복 차림의 승객들이 차 있었습니다. 검정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구레나룻 수염이 북실한데다가 반질반질 손때가 절여진 검정 옷과 각목지팡이... 은근히 풍겨오는 역겨운 냄새 때문인지 사람들이 흠칫거리며 거리를 유지하는 것 같았습니다. 서면에서 환승하고 다시 구명역까지 좁은 공간의 열차 안에 동행은 평소보다 너무 시간이 길게 느껴졌습니다.



 

우리 부활의집으로 올라오는 언덕길이 힘에 부치는 지 몇 번을 쉬고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송 형제님은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왔는지 아무런 대꾸 없이 순순히 요청을 따라주었습니다. 우선 겉옷과 속옷 모두를 벗고 따뜻한 물로 씻도록 했고, 새 속옷과 다른 겉옷들을 준비해 두고 벗은 옷 속의 소지품들을 모두 끄집어내 보니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이었습니다. 특히 바지 양 가랑이 안은 온통 화장지를 둘둘 말아 끼워져(찬바람을 막으려고?) 있었고, 새까맣게 절여진 속옷과 헤어진 사타구니에서는 진물이 흥건하여 온 방안 가득 냄새가 진동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주일예배가 있는 날 모두 방 정돈을 하고 예배 준비를 하는데 찬바람이 들어오지만 창문을 열고는 서둘러 닫지를 않습니다. 목욕을 마치자 속옷부터 갈아입히고 체온 걱정에 다시 두세 겹 더 입히고 두툼한 외투까지 입혔습니다. 몸을 씻은 지가 7~8개월은 되었을 거랍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동안 송 형제님은 나른한지 그대로 따뜻한 온돌방에 쓰러져 코를 골고 깊이 잠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1953년생이신 송 형제님은 서울 출신인데 지난해 6월부터 부산역 생활을 했답니다. 이런저런 개인사는 일단 생략하고자 합니다. 보아하니 허리가 옆으로 약간 휘었고 심한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겨우 화장실 출입과 방 안팎 거동은 스스로 통증을 감수하면서 해결하지만 척추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보였습니다. 그래서 주민등록 재등록과 더불어 바로 기초수급자 신청을 마무리 했습니다. 그래도 하루 세끼와 잠자리가 보장된다는 것에 심리적으로 꾀 안정이 되는가봅니다.


 

우선 급한 대로 다른 형제님의 의료급여 카드로 가까운 의원을 찾아 진료를 받고 진통제 등의 약으로 두 달 간을 기다려야했습니다. 불법이지만 우리 집에 처음 온 형제들의 의료문제는 보험적용도 안되니 엄청난 의료비를 감당키 어려워서 이런 식으로 지내왔습니다. 다행히도 송 형제님은 잘 인내해주고 적응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윽고 기다리던 기초수급자 지정도 되고 의료급여까지 1종으로 신분이 확정되었습니다.


 

45, 곧바로 부산의료원에 입원해 MRI 촬영도 마치고 확실한 진단과 치료 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형제님은 50일 정도를 신경외과 시술(수술은 아직은 부담이 크다고 함)과 투약으로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그러나 척추 1번과 4번이 깨져 금갔기 때문에(역사 안 밴치에서 자다가 낙상하여 발생함.) 그것의 봉합이 오래 걸리는 어려운 치료라는 것입니다. 524일 퇴원한 S형제님은 허리 지지대를 착용하고 별도로 마련한 침대에서 희망의 하루하루를 인내로 보내고 있습니다.


 


 

2019629

첨부파일
IP 175.215.xxx.xxx
이름 비밀번호
※ 한글 1000자 까지만 입력가능 :
Feederfrk multiplies (see also article | 171.5.1.xxx.xxx 2021-10-12 14:39:49
Epiphonerdm the best poets of his era and | 103.161.xxx.xxx 2021-10-18 05:55:24
Feedernyf and was erased, and on cleaned | 46.148..xxx.xxx 2021-10-23 14:02:05
Backliteak A handwritten book is a book | 221.5.1.xxx.xxx 2021-10-24 00:51:20
Holographiccoa secular brotherhoods of scribes. | 190.26..xxx.xxx 2021-11-08 03:3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