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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속교단
작성자 hongsulk1956
작성일자 2018-07-08
조회수 290

 

소속교단 소개

 

기독교대한복음교회’(Christian Korean Evangelical Church)는 원래 기독교조선복음교회라는 명칭으로 시작되었는데, 순수하게 한국인들에 의해 설립된 교단이다. 최태용을 중심으로 신앙은 복음적이고 생명적이어라’, ‘신학은 충분히 학문적이어라’, ‘교회는 조선인 자신의 것이어라라는 3대 표어를 주장하면서, 19351222일 서울 종로6부활사’(현 서울복음교회)에서 순 한국 토종교단을 표방하며 창립하였다. 이날 최태용은 목사와 교단 감독으로 임직하였는데 그는 원래 조선예수교장로교회 소속의 교역자였다가 일본으로 유학 중 일본의 무교회주의자 우찌무라간조우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귀국 후 그는 성서연구에 힘쓰고 김교신 등과 함께 무교회적인 독립전도자로 나섰다. 그때 저작으로 천래지성’(天來之聲), ‘영과진리’(眞理) 등이 남아있다. 최태용은 뜻한 바 있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명치한원 신학부를 거쳐 동경신학의 전신인 일본신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왔다. 그는 당시 장로교회에 소속하려 했으나 조선예수교 장로회 독노회 측에서, 무교회주의적 복음 설파한 일과 근본주의 신학을 비판한 신학경향을 띠었다하여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정기 간행물 천래지성과 영과진리 독자 등 지지자들을 규합해 기독교조선복음교회를 창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당시 최 목사와 뜻을 같이하고 창립한 교인들은 40여명 정도였는데, 그들은 구미 선교사와 선교부에 맹종만 하던 교회 지도자들을 맹렬히 규탄하였다. 그리고 일본교단에도 신앙적으로도 조선인이 독립민족임을 주장하였으며, 경제적으로도 비록 가난하지만 구미 선교부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서야한다고 외쳤다. 최 목사는 교회 창립이후 오랜 동지였던 김교신과 결별하고 독자적인 신앙노선을 형성해 갔다. 한편 그는 10여 년간 꾸준히 초대감독으로 교단을 지도해 오던 중 일본의 문화정책에 동조하면서 친일부역에 나서기도 했는데, 해방을 맞으면서 국가 재건운동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농민운동에 적극 투신하였다. 이승만 정권과 함께하는 초대 대한농민회’(현 농협) 회장을 맡으면서 교단은 2대 감독인 백남용 목사에게 맡겼다. 백남용 목사는 최 목사가 동경 유학 시 막역한 친구요 동지였는데, 일본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한 수재요 당시 전라북도 제헌의원도 지낸바 있었을 뿐 아니라 재력도 있어서 크게 헌신하였다.

 

하지만 6.25 한국전쟁이 나자 최 목사와 백 목사 두 지도자가 모두 공산군에 의해 납치되자 교단은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그래서 최 목사와 함께했던 1세대 교인들은 최 목사가 아끼던 제자요 당시 연희전문대학 신학과 교수로 있던 지동식 목사를 3대 감독으로 추대하였다. 하지만 지 목사는 자신의 연소함과 겸손으로 감독직을 사양하고 창립 1세대 어른들을 모시고 이사회로 개편해 집단지도체제로 변환하였다. 1966년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1985년도에는 아시아기독교교회협의회’(CCA)에 가입을 하는 등, 교회연합 일치운동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196910월에 지 목사는 돌연 이사장직을 사임하고 그의 제자 장석환 목사에게 물려주게 되는데, 이듬해 1970년 지 목사의 소장 도서를 중심으로 한국기독교도서관을 만들어 교단 직영으로 만들어 운용하기도 했다. 교단은 1977년 총회에 이르러서야 다시 총회장제 기구로 개편하게 된다.

 

박정희 유신정국 등으로 반독재투쟁이 가열 차게 일던 70년대 후반에는 교단이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이로 인해 당시 총회장이던 조용술 목사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1979년에는 교단 교역자 양성을 위해 제주도에 신학교를 설립 운영하기도 했으나 80년대 초 당국의 신학교 정비로 폐교되었다가, 1991년에 다시 군산에 신학교와 이듬해 서울에는 신학원(대학원과정)을 세우게 된다. 1980년대에 들어서 어민선교에, 1980년대 후반에는 장애인 및 도시빈민 선교 등 민중선교에 발을 맞추기 시작했고(서울의 낙골교회, 진주의 평강교회, 안양의 빛된교회, 부산의 애빈교회, 광주의 마을교회 등), 1980년대 후반에 민주화와 통일운동이 다시 끓어오르던 즈음, 총회장 조용술 목사가 통일운동을 이유로 다시 옥고를 치르는 한편, 오충일 목사의 재야 민주화 운동에 헌신적 참여 등은 군사독재 정부를 극복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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